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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사

김현구 / 디자인홈 대표

콘텐츠 아키텍처 Content Architecture
아키텍트
“아키텍트”는 흔히 건축물을 설계하는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영화 <매트릭스>에 등장한 ‘아키텍트’는 가상세계인 ‘매트릭스'를 설계했다. architect는 전통적으로 물리적인 대상을 설계하는 사람을 가리키지만 IT분야에서도 사용된다. 대상의 차이만 있을 뿐, 아무것도 세워지지 않는 공간에 질서를 만들고 골격을 세운다는 점에서 같다. 어쩌면 100년 전 근대 건축가들이 지금 이 시대를 마주한다면 건축가의 역할을 비물리적인 가상 공간으로 확장했을 것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그의 책, 『건축을 향하여(Vers une architecture, 1923)』 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오늘날 엔지니어의 미학은 한창 절정에 올라 있고 그에 비해 건축은 고통스러운 퇴보를 하고 있다.
엔지니어는 자연의 법칙에서 도출한 수학적 계산을 활용하여 건축을 한다. 이들의 작품은 우리에게 조화를 느끼게 해준다. 여기에 엔지니어의 미학이 존재한다.


르 코르뷔지에는 당시 기술의 진보로 탄생한 자동차나 비행기 같은 첨단 기계들에서 영감을 얻고 건축에 공학적인 접근을 시작했다. “집은 살기 위한 기계(A house is a machine for living in)”라고 말할 만큼 새로운 소재와 기술을 건축으로 끌어들였다. 같은 시각으로 21세기를 바라보면 어떨까? 르 코르뷔지에라면 지금 이 시대 건축을 어디로 이끌까?
영화<매트릭스:리로디드(The Matrix Reloaded, 2003)>에 등장하는 아키텍트 (이미지 출처: www.imdb.com)
현실과 가상의 두 개 축
영화 <매트릭스>는 2199년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에서 아키텍트가 설계한 가상 공간은 20세기를 재현한다. 기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발전한다. 그에 비해 우리의 감성이나 사고는 지난 시절의 추억에 잠시라도 머물러 있길 바란다. 르 코르뷔지에가 말한 ‘고통스러운 퇴보'는 인류 역사에서 늘 있었던 일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2199년의 인류가 1999년으로 설계된 매트릭스에 갇힌다는 영화의 설정은 지금 우리의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디자인이나 미학 같은 창작의 범주에 있다고 단언하던 일들이 기계 학습에 의해 템플릿으로 대체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은 디자인을 사람이 하는 고유의 창작활동으로 정의한다. TV 광고에 나오는 사람이 진짜 사람인지, 방금 받은 메시지, 이메일은 사람이 보낸 것이 맞는지 주의해서 살펴봐야 알 수 있을 만큼 기술은 과거 인류가 쌓은 유산을 빠르게 기계로 대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실제 현실(오프라인)과 가상의 세계(온라인) 양쪽에 적당히 발을 딛고 균형을 잡아야 한다. 어느 한쪽만으로는 21세기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상당 부분은 이미 온라인, 가상의 공간으로 채워지고 있다.

2020년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내 만 3세 이상 인구의 91.9%가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으며 이 중 94.9%는 하루에 1회 이상, 주 평균 20시간 이상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전체 가구 중 94.9%가 스마트폰을 보유한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일반TV’가 54.9%, ‘데스크탑 PC’가 51.9%인 것과 비교하면 모바일 통신기기가 우리가 생활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은 빠르게 디지털화되고 있고 온라인, 가상화되고 있다. 세상이 일순간에 어느 한편으로 재편될 리는 없고 적어도 현실과 가상, 두 세계가 공존하며 상호작용한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아키텍트라는 용어가 물리적인 현실 세계를 넘어 가상공간의 프로그래밍, 계획에서도 사용되듯이 오프라인의 무엇은 곧 온라인 어딘가로 연결, 확장된다. 현실과 가상 어느 한편에서만 포지셔닝해서는 다가올 미래, 아니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오늘조차 대비하기 어렵다.
시대의 도구
르 코르뷔지에는 ‘도구'에 대해 이렇게 썼다.

도구는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같은 문명화의 단계를 거치며 발전되어 왔다. 도구는 끊임없는 개량의 결과물이다. 모든 세대의 노력이 거기에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도구는 진보의 노골적이고 즉각적인 표현이다. 물론, 도구로써 집, 건축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근대의 건축가들이 집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 했다면 지금 이 시대를 관통하는 가장 대표적인 도구는 무엇일까? 의식주 못지않게 이미 우리 일상의 한켠을 차지한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근대 건축가들이 건축이라는 도구를 개량해 주거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변화시켰다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주목할만한 도구는 다름 아닌, 인터넷과 모바일 디바이스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이런 얘기는 이미 식상하게 들리 수 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인터넷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자기 분야에서는 막연하게 느끼거나 무관하다고 단정짓기도 한다. 또는 너무 쉽게 생각한다. 플랫폼, 커뮤니티를 만들기만 하면 사람들이 모여 자가발전해 인기 서비스가 될 거라 믿는다거나 결제기능만 붙이면 상품이 불티나게 팔려 수익이 생길 거라고 믿는 식이다. 홈페이지를 종이 잡지같은 시각 디자인 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도 웹을 인쇄 출판물의 디지털 버전쯤으로 보는 것이다. 도구가 바뀌고 시대가 바뀌었는데 우리의 사고는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종이책으로 글을 읽을 때와 데스크탑 PC에 연결된 대형 모니터 화면을 볼 때, 스마트폰의 좁은 세로형 화면을 볼 때, 우리는 각기 다른 태도를 취한다. 이때 등장하는 말이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이다. 이미 UX 또는 UI라는 용어는 익숙하지만, 그저 나와는 상관없는 IT 전문용어로만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UX/UI는 IT분야에서 시작된 용어라기보다는 인체공학처럼 우리가 늘 일상에서 접하는 기호와 취향, 편의를 바탕으로 정리된 것에 가깝다. 사용자 경험은 어느 분야에서나 적용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이론과 기술을 현실에 적용하지 못하는 고정관념, 사고의 편중에 있다. 과거에 익숙했던 도구와 사용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새로운 기술과 그 기술을 활용할 도구는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 기술도 도구도 아닌 사고의 문제 때문이다.
모바일 동영상 서비스 ‘퀴비'의 턴스타일(Turn Style) (이미지 출처: qz.com)

2020년 등장한 모바일 동영상 서비스 ‘퀴비(Quibi)’는 스마트폰의 가로 화면, 세로 화면에 맞춰 영상이 최적화되는 ‘턴스타일(Turn Style)’을 선보였다. 모바일 전용 동영상 서비스라는 점에 걸맞게 스마트폰의 세로 화면에서 피사체가 클로즈업되도록 한 것이다.
1950년대 영화산업은 가정에 TV가 보급되면서 위기를 맞는다. 당시 TV는 기존 영화의 화면 비율인 4:3에 맞춰 생산되었고 영화 업계는 TV와 차별화하기 위해 ‘와이드 스크린’을 내놓았다. 그리고 2020년, 스마트폰 환경에 맞춰 제작된 영상 서비스가 등장한 것이다.

사용하는 도구에 따라 사고방식, 사고 체계도 변한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금 이 시대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우리의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다만, 이 도구에 맞춰 우리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게 된다. 웹을 자신이 속한 분야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홈페이지에 관한 오해
인터넷, 웹을 나의 일로 직접 연결 지어 생각할 때가 있다. 다름 아닌 홈페이지를 만들 때다. 대부분, 홈페이지는 ‘만든다'라고 말한다. 홈페이지를 ‘운영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보다는 ‘만든다', ‘만들어 봤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홈페이지는 웹디자이너가 만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가 홈페이지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드러나는 부분이다.

첫째, 홈페이지를 운영이 아닌 제작의 대상으로만 본다는 점이다. 디자인은 조금씩 다를지 몰라도 최신 게시물이자 최초의 게시물 제목이 “홈페이지 오픈”인 경우를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운영 계획 없이 제작되는 홈페이지는 온라인에 배포한 명함 이상의 역할을 하기 어렵다. 어쩌면 그 이상을 기대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웹에는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잠재력이 숨어 있다.

둘째, 시각적인 디자인에 치중한다. 홈페이지를 시각적인 결과물로 보기 때문이다. 특히나 포트폴리오나 기업 소개를 목적으로 한 웹사이트들에서 이런 경향이 크다. 정보 전달보다는 이미지,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해 디자인이 지나치게 몰입한다. 그래서 글꼴, 자간, 레이아웃 같은 인쇄물을 디자인할 때 고려하는 기준이 웹에 똑같이 적용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종이책과 웹사이트는 다르다. 책은 판형에 맞춰 디자인하지만 요즘 웹은 책처럼 하나의 판형으로 고정할 수 없다. 흔히 ‘반응형 웹 디자인(Responsive Web Design)’이라고 하는데, 데스크탑 PC의 대형 모니터에서부터 태블릿 PC, 스마트폰까지 다양한 해상도와 화면 비율에 최적화하는 것이 중요해졌기 때문에 판형, 즉 레이아웃을 고정해 계획할 수 없다. 이런 특징은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나타났다. 세로형의 작은 화면을 통해 접속하는 이용자의 비중이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홈페이지에 대한 오해는 스마트폰이 급격히 보급되면서 벌어진 기술과 인식의 격차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홈페이지'라고 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는 스마트폰이 나오기 한참 전, 닷컴 버블로 인터넷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던 시절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콘텐츠 계획
가상 현실은 현실을 닮았다. 온라인 서비스는 오프라인의 현상을 바탕으로 설계된다. 대면 미팅에서도 단순히 외모나 인상만으로 신뢰를 주기는 어렵다. 신뢰를 얻으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오히려 신뢰를 쌓는 과정이 오프라인 보다 온라인에서 더 까다로울 수 있다. 나아가 온라인에서는 아주 짧은 순간에 신뢰를 잃기 쉽다. 그리고 웹 이용자 누구나 자신이 방문한 웹페이지의 정보와 태도를 직관적으로 간파하는 방법을 경험적으로 터득하고 있기 때문에 온라인의 정보는 보다 체계적이어야 한다.
(출처: https://www.nngroup.com/articles/how-long-do-users-stay-on-web-pages/)

statista.com에서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웹사이트의 방문당 체류 시간은 구글이 1위로 22분 44초, 2위 페이스북이 22.43초, 네이버는 19위로 3분 14초다.

UX 연구 및 컨설팅 회사인 닐슨 노먼 그룹(Nielsen Norman Group)에 따르면 평균 웹페이지에 머무는 시간은 1분이 채 되지 않으며 페이지의 ¼ 정도만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웹페이지마다 품질이 다르다는 사실을 웹 이용자 스스로 잘 알고 있으며 불필요한 페이지에 머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체류 여부를 짧은 시간 안에 결정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페이지 방문 후 10초 안에 체류 여부가 결정된다고 한다.

웹 디자이너나 웹 관련 종사자가 아닌 이상, 웹사이트의 디자인을 10초 이상 관찰할 사람은 거의 없다. 웹을 제대로 활용하고 거기서 성과를 얻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실 이미 누구나 그 답을 알고 있다. 건축 설계 과정에 빗대어 보더라도 답은 쉽게 나온다. 주택을 설계한다고 치자. 그 집에 살 가족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몇 명이 살고 가족 구성원의 라이프 사이클에 맞출 수 있다면 더 좋다. 결국 집은 건축가의 작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삶이 담길 공간이기 때문이다. 웹도 마찬가지다. 곧바로 디자인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거기 담길 콘텐츠의 특성을 파악하고 운영, 이용 대상 및 목표 성과 등에 대한 계획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10초의 벽을 넘을 디자인이 가능하다. 웹 이용자에게 10초는 디자인이 아닌 정보를 찾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웹사이트를 왜 만들려고 하는지 물었을 때, “그냥 하나쯤 있어야 할 것 같아서”라고 말하는 경우가 아직도 종종 있다. 하지만 웹 이용자들은 정보가 빈약하고 가독성이 떨어지는 웹페이지들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린다. 그런 훈련을 우리는 주 20시간 이상(국내 평균 인터넷 이용 시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콘텐츠와 주도권
오프라인에 기반한 전통적인 산업 분야일수록 온라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도입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거꾸로 IT업계에서는 오프라인의 전유물로 남아있는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 이미 지금의 세계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양 축이 상호 결속되는 모델로 나아간다. 쇼핑, 배달, 택시 등 산업 전반에 걸쳐 오프라인 서비스는 온라인 플랫폼과 융합되고 있다. 건축 분야에서도 건축물의 규모 및 사업성 검토를 해주는 온라인 서비스들이 출시되었고 시공감리 앱도 시중에 나와 있다.

물론, IT 관련 인력이 없는 오프라인 기반의 기업이 곧바로 플랫폼 서비스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반대로 IT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진출하려는 분야에 대한 정보나 노하우를 오랜 시간 쌓아야 하므로 마찬가지로 쉽지 않다. 결국, 오프라인과 온라인 어디에서 시작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오프라인 기업이 가진 가장 중요한 자산은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객과의 첫 미팅에서는 어떤 정보를 확인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후 과정에서 살펴야 할 체크리스트들이 있다. 수년간 사업을 진행하면서 고객의 요구사항들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경험을 통해 얻은 정보가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사업 과정에서 얻는 경험 정보를 기록하는 것이 프로그래밍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어느 회사나 비슷한 고민을 한다. 신입 사원을 채용해 업무가 손에 익을 때쯤 되면 퇴사하고 다시 새로 직원을 채용해 같은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 인적 자원의 관리 문제는 어느 기업이나 공통으로 어려워하는 부분이다. 신입 사원의 업무 교육이 체계적으로 매뉴얼화되어 있다면 어떨까? 문제는 이런 문제를 사업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부수적인 일로 바라보는 데 있다. 사실 사업의 노하우는 정보화 과정을 통해 확장될 수 있다. 콘텐츠를 가진 측이 사업의 주도권을 쥐고 있지만, 그 정보를 체계화해서 서비스로 만들지 못할 경우, 온라인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기는 어렵다. 신입사원에게 유용한 매뉴얼이라면 발전 시켜 관련 종사자 또는 관심 있는 일반에도 서비스 할 수 있다. 기술은 다음 문제다.
결론, 콘텐츠의 빈곤
미국의 철학자, 해리 프랭크퍼트는 그의 책 『평등은 없다』에서 미국의 소득 불평등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내가 보기에 미국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국민 소득이 지나치게 불평등해서가 아니라, 국민 중에 빈곤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다. 해리 프랭크퍼트의 말을 소득이 아닌 콘텐츠의 문제로 바꿔 설명할 수 있다. 웹을 디자인의 문제, 제작과 기능의 문제로 오해하지만 정작 근본적인 문제는 준비되지 않은 ‘콘텐츠 빈곤'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신입 사원에게 지침을 주기 위해 실무자 중 누군가 업무를 접고 교육에 나서야 한다면, 사실은 신입사원에게 줄 정보가 충분하지 않거나 정보가 체계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홈페이지를 만드는 일에만 집중하고 운영 계획이 없는 이유도 운영할 콘텐츠가 없거나 그에 따른 계획이 없어서다. 웹을 정보 체계가 아닌 시각 디자인 물로만 본다면 이때도 정보, 즉 콘텐츠의 빈곤을 의심해야 봐야 한다. 콘텐츠가 부족할수록 디자인으로 채우려 한다.

지금과 같이 온, 오프라인이 융합되는 세상에서 정보화되지 않은 채로 누군가의 머릿속에 담긴 모호한 경험은 정보라 부르기 어렵다. 웹에서는 10초 안에 내가 가진 정보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장황한 연설을 끝까지 들어줄 청중은 많지 않다. 이미 오래전에 정보화 사회에 진입했지만, 종종 우리는 웹을 있으나 마나 한 부수적인 홍보 수단쯤으로 여길 때가 많다. 온갖 혁신적인 서비스가 웹을 통해 스마트폰으로 연결되고 있고 그런 서비스들을 이용하면서도 오래된 편견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플랫폼이 작동하려면 거기 필연적으로 콘텐츠가 필요하고 그 분야의 노하우가 학습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걸 가진 전통적인 분야에서는 자신이 축적한 노하우를 여전히 무형의 자산으로 막연하게 방치한다.

르 코르뷔지에의 ‘현대건축 5원칙'
1. 필로티 2. 옥상정원 3. 자유로운 파사드 4. 자유로운 평면 5. 가로로 긴 창
기술은 수단일 뿐이다. 인터넷은 도구일 뿐이다. 플랫폼은 통로일 뿐이다. 근대 건축가들이 당대의 엔지니어링 기술을 보며 만들어낸 원칙들을 떠올리자. 지금 우리도 자기만의 원칙을 세울 때다.

김혁준 / 픽셀하우스 편집장

어쩌면 모두 알고 있는 책 쓰는 방법
“책을 좀 쓰려고 합니다”
출판 관련 문의 전화나 메일을 종종 받는다. 대부분 책을 써본 경험이 없지만 분야에서 나름 성과를 낸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연구한 내용이나 진행했던 작업을 책으로 묶고 싶어 한다. 이제 막 창업한 청년부터 실무를 떠난 은퇴자까지 세대도 매우 다양하다. 과거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난다’라고 말하던 ‘황혼의 글쓰기’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이제는 누구나 언제라도 원한다면 당장 쓰고 표현하는 시대다. 여전히 고전적인 출판의 개념을 고집하고 있다면 어쩌면 당신은 아무도 읽지 않을 책을 혼자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것도 책으로 낼 수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책이란 일정 분량 이상의 인쇄된 페이지를 묶은 것으로 대중에게 공개 가능해야 한다고 정의한다. 여기서 분량과 공개 여부는 형식과 내용의 완성도를 가늠하는 최소기준이다. 과연 책으로 만들어질만한 콘텐츠인가 하는 질문이 중요한 이유다. 콘텐츠(contents)라는 단어는 (담긴) 내용, 기사, 정보의 의미도 있지만 ‘가득 채워진’ ‘만족하고 있는’ 상태를 나타내기도 한다. 즉 모든 것이 콘텐츠가 되는 것은 아니며, 더더욱 책이 될 수는 없다.
작년에 출간된 신간 도서는 6만 3천여 종, 하루에 약 170종의 책이 세상에 나왔다. (학습참고서 제외, 대한출판문화협회 납본자료 기준) 출판시장이 위축되고 시스템이 붕괴하고 있지만 여전히 책은 계속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건축, 조경, 디자인 관련 도서는 소요 비용이 다른 분야에 비해 높아서 상황이 녹록지 않다. 대형 출판사들이 화보 중심의 번역서까지 시리즈로 출간할 만큼 반응이 좋았던 20여 년 전 상황에 비하면 지금은 서점 판매대조차 사라진 ‘기타’ 분야가 되었다. 판매를 기대하고 출판사가 책을 기획하기에는 이미 독자들이 사라져 버렸다. 책이 나오지 않아 독자가 줄고, 독자가 줄어 책을 낼 수 없는 악순환의 결과다.
독자보다 저자의 욕망이 앞서는 전문 분야의 경우, 기획 출판보다는 기업이 후원하는 메세나 출판이나 저자가 비용을 일부 책임지는 자비 출판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다. 앞에서 언급한 책에 담길만한 콘텐츠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기준이 독자도, 출판사도 아닌 저자에게 다시 돌아왔다.
“어떤 책을 만들고 싶은가요?”
과거의 책이 콘텐츠 완성의 강력한 결과물이었다면 오늘날 책은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여러 대안 중 하나일 뿐이다. 언제 어디서나 접근 가능한 미디어 세상에서 넘쳐나는 이미지와 영상이 충분히 독자들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고 있으며, 강한 전파력과 확장성을 가진 매체들의 영향력 아래 책은 끌려가고 있다. 여기서 책의 종말을 이야기하고 싶은 건 결코 아니다. 단지 출판이 있던 자리가 이제는 바뀌었다는 사실과 그 차이를 이해하고 역할과 가치를 재평가하지 않으면 콘텐츠를 담아야 할 저자(크리에이터, 플래너, 마케터 등)와 콘텐츠를 요구하는 독자(유저, 커스터머 등)는 점점 멀어질 것이다.
얼마 전부터 ‘출판’으로 번역되었던 ‘퍼블리싱’이란 단어를 구분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고전적인 출판 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도도 있고, 네트워크, 접속, 연결 같은 키워드가 살아있는 새로운 영역의 퍼블리싱이 중요해졌다는 의미도 있다. 간단히 말해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공개되는 과정이 ‘퍼블리싱’이며 이 콘텐츠는 기존의 유통 시스템이 아닌 디지털 세상에서 소비되는 새로운 ‘책’의 자리에 있다. 가깝게는 전자책, 웹북, 앱북, 오디오북 등 독서 방식의 변화는 물론, 초단편 소설, 채팅형 소설, 웹소설, 웹툰 등 모바일에 최적화된 구성과 내용의 변화를 가져왔고, 영상, 게임, 전시, 이벤트와 동시에 기획되는 경계의 변화도 눈에 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변화는 독자(소비자)의 콘텐츠 소비방식이 바뀌면서 만들어진다. 새로운 플랫폼이 만들어질 때마다 가장 적합한 콘텐츠가 부각될 것이고, 새로운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죠?”
물론, 책을 쓰고 싶은 당신이 복잡한 출판 환경을 모두 이해할 필요는 없다. 단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휴대전화에 밀려난 손목시계처럼 여전히 내게 필요한 다른 이유를 찾지 못하면 애써 불편함을 감수할 사람은 없다. 지금 당신이 쓰고 보여주고 싶은 콘텐츠를 담을 가장 좋은 그릇을 찾아야 한다. 100%를 모두 담을 그릇이 아니라 나누어 담을 여러 그릇을 찾아도 좋겠다. 그중 하나가 종이책일 수 있고, 다른 것은 웹북이나 유튜브, 오디오북일 수도 있다. 정리하면 가지고 있는 콘텐츠와 이것을 보여주는 방식, 저자와 독자의 연결점, 가장 효과적으로 독자가 콘텐츠를 접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먼저 마음을 정해야 합니다.”
먼 곳으로 떠나려는 사람에게 고백해야 한다면 어떤 말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시간이 매우 촉박하다면? 주변이 소란스럽다면? 좋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을수록 더욱 분명한 것은 꼭 하고 싶은 메시지를 잘 알아들을 수(볼 수) 있도록 전달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때 듣는 이의 상황과 생각을 알지 못한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어떤 기획이나 계획을 제안하고, 디자인을 설득해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책(글)의 시작은 목적을 정하는 것이다. 목적지 없이 떠나면 그 때부터 방황이 시작된다. 먼저 책(글)의 제목을 정해보자. 그 밑에 쓰고 싶은 책을 소개하는 글을 한 문장으로 써보자. 그리고 누구를 위한 책인지 예상 독자를 적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길이 정해졌다면 다음은 목차를 써보자. 물론 글을 쓰면서 계속 고치겠지만 상관없다. 지금은 바라보고 걸어갈 마음의 깃발이 필요하다.
“글을 잘 쓰고 싶어요”
몇 년 전부터 글쓰기 바람이 불고 있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유시민, 생각의길, 2015), <대통령의 글쓰기>(강원국, 메디치, 2014),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김정선, 유유, 2016), <끝까지 쓰는 용기>(정여울, 김영사, 2021). 책 이름을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책이 쏟아졌고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다. 이 중 한 권 정도는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에 읽어보았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책을 쓰겠다는 강한 동기보다는 소셜미디어에서 나를 잘 드러내고 싶은 일상의 이유가 더 클 것이다. 아주 짧은 글이지만 어떤 글은 강한 인상을 남기고, 어떤 글은 쉽게 잊힌다. 우리는 작가가 아니지만 매순간 글을 쓰며 산다. 간단한 문자메시지부터 취업을 위한 자기소개서까지 글을 쓰지 않고는 살 수 없다. 글쓰기는 운동선수가 되기 위한 피나는 훈련이 아니라 건강을 위한 운동처럼 일상의 활동이 되어야 한다. 몸에 좋은 음식(독서)을 먹고 규칙적이고 알맞은 운동(글쓰기)을 꾸준히 한다면 당신도 건강한 몸(글)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책을 좀 써보셨나요?”
다시, 처음 대화를 이어가 보자. “쓰신 글이 있으면 좀 보고 싶습니다.” “아직, 쓰지 않았지만 모두 이 머릿속에 있습니다. 이제 쓰기만 하면 됩니다.”
책을 내고 싶다는 신인 저자의 대부분은 아직 원고를 쓰지 않았다. 원고는 저자의 능숙한 말과 파워포인트, 사진 폴더에 담겨있고, 저자는 그것이 완성되기 직전의 콘텐츠라고 확신한다. 감히 예상해본다면 그 폴더 속 자료는 몇 년이 지나도 그대로 쌓여있을 것이고, 당신은 여전히 쓰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예상치 못한 외부 요인으로 시험 치듯 불난 집 아궁이처럼 며칠 만에 뚝딱 마무리될 수도 있겠지만 아쉽기는 매한가지다.
책을 쓰는 최선의 방법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단지 주저하고 있을 뿐이다. 목표를 정했다면 걸어라. 하루에 한 걸음씩이라도 꼭 걸어야 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미루기 시작하면 결코 ‘탈고’의 기쁨을 맛볼 수 없다. 산 중턱에서 머물다 내려오는 사람들은 정상의 바람을 알지 못한다. 책을 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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